합스부르크 가문 3부: 뜻밖의 황제 루돌프 1세

합스부르크 가문 3부: 뜻밖의 황제 루돌프 1세

시골 백작의 대관식과 야심의 폭발: 만만했던 꼭두각시의 반란

작성일: 2025년 10월

지난 2부에서 우리는 신성로마제국의 황제 자리가 20년간 공석이었던 ‘대공위 시대’의 정치적 배경을 살펴봤습니다. 제후들(선제후)은 중앙집권을 막기 위해 무능하고 영향력 없는 꼭두각시를 황제로 앉히기로 합의했고, 그들이 만장일치로 고른 인물이 바로 합스부르크 백작 루돌프였습니다.

선제후들에게 루돌프는 완벽한 인물이었습니다. 가진 것은 알프스의 빈약한 영토뿐인 데다, 나이도 55세로 많았고, 재산도 얼마 되지 않아 전쟁을 일으킬 능력도 없어 보였습니다. 그들은 그저 명예직인 황제 이름만 던져주면 충성을 바치고, 나중에 문제가 생겨도 다른 제후들에게 위협이 되지 못하리라 판단했습니다. 하지만 무지하다는 것은 무서운 일이었습니다. 이 시점에서는 아무도 루돌프의 야심과 저력을 깨닫지 못했습니다.

‘말 뼈다귀’의 황제 등극과 오타카르 2세의 분노

당시 신성로마제국 내에서 가장 강력하게 세력을 확장하던 인물은 보헤미아 왕 오타카르 2세였습니다. 그는 루돌프와는 정반대로 유능하고 강력한 명문가의 왕이었으며, 선제후들이 절대 황제로 만들지 않으려던 상대였습니다.

오타카르 2세는 루돌프의 대관에 즉각 이의를 제기하며 로마 교황에게 직접 호소했습니다. “합스부르크가라니, 어디서 굴러먹던 말 뼈다귀인지 모를 일족은 제위에 어울리지 않습니다!” 이 한마디는 루돌프의 정통성을 완전히 부정하는 모욕이었습니다.

⚔️ 루돌프의 기회 포착

황제 선출 당시 루돌프는 바젤 대주교와 한창 교전 중이었습니다. 하지만 천재일우의 기회를 놓치지 않기 위해 그는 즉시 강화를 맺고 대관식을 치르러 돌아갔습니다. 마치 일본 전국시대, 혼노지의 변 소식을 듣자마자 군대를 철수시킨 도요토미 히데요시처럼, 루돌프는 개인적인 싸움보다 황제라는 거대한 명예를 잡는 것을 우선시했습니다.

그리하여 일개 시골 백작이던 루돌프는 신성로마 황제 루돌프 1세로 변신했고, 합스부르크왕조는 비틀거리면서도 역사의 첫걸음을 내딛게 됩니다.

‘빈(Wien)’을 돌려줘! 황제의 권위에 정면으로 반기를 든 오타카르 2세

하지만 오타카르 2세와의 갈등은 깊어질 수밖에 없었습니다. 이 보헤미아 왕은 황제 선출 이전부터 오스트리아 영주에게 후계자가 없다는 이유로 이미 몇 년째 전략적 요충지인 빈(Wien)을 점령하고 있었습니다.

루돌프 1세가 황제의 자격으로 빈 반환을 요구했으나, 오타카르 2세는 이를 계속 무시했습니다. 이는 곧 신성로마 황제의 권위에 정면으로 반기를 든 것을 의미했습니다. 루돌프에게는 이제 실력 행사 외에 다른 방법이 없었습니다.

선제후들은 루돌프의 결의에 찬성을 보냈지만, 그들은 그저 입으로만 응원할 뿐 병사를 빌려주지는 않았습니다. 그들의 속셈은 명확했습니다. 루돌프와 오타카르가 싸우다 같이 망해서, 자신들이 그들의 영지를 분할하는 것이 가장 좋은 그림이었던 것입니다.

결국, 명목뿐인 황제 루돌프 1세는 누구의 도움도 없이, 자신의 빈약한 군대와 재력만으로 유럽 최강의 왕 오타카르 2세와 맞서야 하는 절체절명의 위기에 놓였습니다. 대관식 후 5년이 지난 1278년, 두 세력은 빈 북동쪽 마르히펠트에서 격돌할 운명에 처하게 됩니다.

과연 55세의 시골 백작 출신 황제 루돌프 1세는 유럽의 패권을 쥐고 있던 오타카르 2세를 상대로 승리하여 합스부르크 가문의 운명을 바꿀 수 있었을까요? 다음 4부에서는 마르히펠트 전투와 승리의 비결에 대해 자세히 다루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