합스부르크 가문 2부: 명목뿐인 황제 자리
신성로마제국, 대공위 시대의 정치 드라마: 꼭두각시를 찾던 선제후들
작성일: 2025년 10월
지난 1부에서는 유럽을 호령했던 합스부르크 가문의 기원이 사실은 스위스 북동부의 초라한 약소 호족이었다는 반전 스토리를 전해드렸습니다. 이제 이 시골 백작 루돌프에게 어떻게 운명의 전환점이 찾아왔는지 그 무대를 살펴보겠습니다. 바로 신성로마제국(神聖ローマ帝國)입니다.
신성로마제국의 위엄과 권위: 황제가 되었어도 권력은 없었다
‘제국(帝國)’이란 복수의 민족과 국가를 통합한 군주국을, ‘신성(神聖)’이란 로마 교황이 왕관을 씌워주며 가톨릭의 맹주임을 보증했다는 뜻입니다. 962년 오토 1세의 대관식으로 시작된 이 제국은 고대 로마제국을 재현하겠다는 거대한 이상 그 자체였습니다. (참고로 나치는 이 HRE를 ‘제1제국’이라 칭했습니다.)
하지만 13세기의 현실은 이상과 거리가 멀었습니다. 독일은 겉으로는 제국의 지배 아래 놓여 있었지만, 실제로는 마치 전국시대의 일본처럼 군웅할거(群雄割據) 상태였습니다. 제후들이 강력한 중앙집권화를 막았기 때문에 황제는 힘으로 나라를 다스릴 수 없었습니다.
📜 볼테르의 일침
후세의 계몽주의 철학자 볼테르는 신성로마제국에 대해 냉소적으로 평했습니다. “신성하지도 않고 로마답지도 않고, 애초에 제국조차 아니다.” 실제로 황제가 된다고 해서 영토가 늘어나거나 권력이 집중되는 것은 아니었기에, 황제의 호칭은 이미 명목상의 것이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황제의 자리는 유럽 최고의 지위인 ‘왕 중의 왕’이라는 절대적인 심리적 위엄과 권위를 지니고 있었습니다. (현대의 ‘유엔 사무총장 겸 미국 대통령’ 같은 상징적인 지위였다고 비유할 수 있습니다.) 이 명예를 차지하기 위한 쟁탈전은 여전히 치열했습니다.
꼭두각시를 찾다: 선제후들의 막장 선거와 20년간의 대공위 시대
독일 왕, 즉 신성로마 황제의 자리는 세습이 아닌 유력 제후 7명(선제후)에 의한 선거로 결정되었습니다. 이 선제후들의 목표는 단 하나였습니다. 누군가 뛰어난 인물 한 명이 나타나 중앙 집권국가를 만드는 것을 막는 것이었습니다.
이들은 황제를 선정하는 것을 계속 미루었습니다. 로마 교황이 재촉해도 아랑곳하지 않았고, 어이없게도 20년 동안이나 제위를 비워둔 채 방치하는 사태가 발생합니다. 역사는 이 시기를 ‘대공위(空位) 시대’라고 부릅니다.
기다리다 지친 교황이 직접 황제를 지명하려 나서자, 그제야 선제후들은 어쩔 수 없이 인선을 시작합니다. 그들의 선택 기준은 명확했습니다. 자신들의 꼭두각시가 되어 발목을 잡히지 않을 만한, 최대한 무능하고 영향력이 없는 남자를 고르는 것이었습니다.
선제후들이 원했던 조건, 즉 알프스의 빈약한 영토만 가지고 있고 재산도 많지 않아 전쟁을 일으킬 능력도 없어 보이는 무해한 후보. 그 조건에 딱 들어맞는 인물이 있었습니다. 바로 우리가 1부에서 만났던 시골 호족 출신의… 합스부르크 백작 루돌프였습니다.
다음 3부에서는 선제후들에게 철저히 얕보였던 루돌프가 어떻게 황제 자리에 오르고, 이 만만해 보이던 ‘꼭두각시’가 유럽의 패권자 오타카르 2세와 목숨을 건 싸움을 벌이게 되는지에 대해 집중적으로 다루겠습니다. 기대해 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