푸른 피의 일족의 반전 기원: 합스부르크 가문 1부
스위스 시골 백작이 유럽 최대 제국을 세우다: ‘푸른 피’의 허세 뒤에 숨겨진 진실
작성일: 2025년 10월
역사를 통틀어 자신들의 혈통을 ‘신에게 선택받은 고귀한 피’라고 자부했던 일족이 있습니다. 바로 합스부르크(Habsburg) 가문입니다. 수 세기에 걸쳐 다섯 종교와 열두 민족을 통솔했고, 신성로마제국 황제의 자리를 독점하다시피 했으니 그 자신감은 단순한 허세가 아니었습니다.
그들의 지배권이 미쳤던 범위는 상상을 초월합니다. 지금의 오스트리아, 독일, 스페인, 네덜란드, 체코, 헝가리, 포르투갈을 넘어 브라질, 멕시코 캘리포니아, 심지어 인도네시아까지 뻗어 있었습니다. 역사상 한 사람이 가장 많은 나라의 군주를 겸한 사례 역시 합스부르크 가문에서 나왔죠.
📌 압도적인 칭호
- 카를 5세: 유럽 역사상 가장 많은 70가지 이상의 직함을 가짐.
- 마리아 테레지아: 정식 칭호에 ‘겸(兼)’이 장장 40번 이상 이어졌음.
- 프란츠 요제프 제국 말기: 러시아를 제외하고 유럽 최대의 영지 면적을 자랑.
“푸른 피”의 허세 뒤에 숨겨진 진실: 기원은 스위스 시골 호족
이처럼 광대한 제국을 건설하고 ‘왕 중의 왕’으로 군림했던 합스부르크 일족이지만, 그 강대한 힘의 기원은 의외로 오스트리아의 화려한 궁전이나 독일의 대도시가 아니었습니다.
그들의 역사는 10세기 말쯤 스위스 북동부의 한 시골 구석에서 등장한 약소 호족에서 시작됩니다. 믿기지 않겠지만, 수 세기 후 유럽을 호령하게 될 합스부르크 가문의 씨앗은 초라한 알프스 산골에 뿌려진 것에 불과했습니다.
혼돈 그 자체였던 영지 찬탈 전쟁 시대, 주위의 강대한 세력들 틈바구니에서 생존을 모색하던 이 보잘것없는 가문이 어떻게 유럽 역사의 주인공으로 발돋움할 수 있었을까요? 그 첫 단서는 그들의 이름이 유래한 성채에서 찾을 수 있습니다.
이름에 담긴 정체성: ‘사냥꾼의 요새’ 합스부르크성(Habichtsburg)
호족으로부터 2~3대가 지난 11세기 초, 가문은 ‘합스부르크성 하비히츠부르크(Habichtsburg)’를 세웠습니다. (성체 일부는 지금도 스위스 브루크에 남아 그들의 역사를 증언하고 있습니다.)
가문의 이름은 이 성의 이름에서 유래했는데, 그 의미를 살펴보면 그들의 정체성을 엿볼 수 있습니다. ‘하비히트(Habicht)’는 ‘사냥’ 또는 ‘매’를, ‘부르크(Burg)’는 ‘요새’ 또는 ‘성체’를 뜻합니다. 즉, ‘사냥꾼의 성’ 혹은 ‘매의 성’이라는 뜻을 가진 ‘하비히츠부르크’에서 지금의 합스부르크(Habsburg)라는 명칭이 탄생한 것입니다.
12세기에 이르자 이 성을 본거지로 삼은 후손들이 비로소 ‘합스부르크 백작’을 칭하게 되었습니다. 혼란스러웠던 당시에 ‘백작’이라는 작위는 본인이 멋대로 칭했을 가능성도 높습니다. 하지만 주위에서 그 칭호를 납득했다는 것은, 이미 이 일족이 라인강 상류 일대를 중심으로 영지를 꽤 늘려가며 무시할 수 없는 실력을 지니고 있었다는 명확한 방증이 됩니다.
가난한 스위스 시골 호족에서 시작하여 ‘사냥꾼의 성’을 기반으로 조금씩 세력을 키워나가던 합스부르크 가문. 그들이 유럽의 운명을 쥐게 된 것은 그로부터 100여 년이 더 지난 13세기 초, 한 인물에게 운명의 전환점이 찾아오면서부터입니다.
다음 2부에서는 아직 가난한 백작이던 루돌프에게 신성로마제국 황제의 자리라는 천재일우의 기회가 어떻게 찾아왔는지, 그리고 그 자리가 당시 어떤 의미였는지에 대한 흥미진진한 이야기를 이어가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