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곤 실레: 삶과 예술 (1890-1918)의 연대기
이글은 에곤 실레: 삶과 예술 (1890-1918)의 연대기를 알아본다. 1890태어난후 그의 생애를 동안의 행적이다. 마지막 1918년에는 그의 최후 작품 '가족'이 있다.
1. 초기 생애와 예술적 시작
- 1890년: 에곤 실레는 오스트리아 툴른에서 태어났다.
- 1890~1900년: 어린 시절부터 예술에 몰두했으며, 고향과 주변 환경에서 모티프를 찾았다.
- 1906년: 빈 미술 아카데미에 입학하여 본격적으로 예술 공부를 시작했다.
2. 예술적 발전과 구스타프 클림트의 영향
- 1907년: 실레는 구스타프 클림트를 처음 만난다.
- 클림트는 실레에게 큰 영향을 미쳤으며, 그를 꾸준히 격려했다.
- 실레의 초기 작품들에는 클림트의 스타일이 반영되었다.
- 1908년: 클로스터노이부르크에서 열린 전시회에 참여한다.
- 1909년:
- 실레는 아카데미의 보수적 가르침에 반기를 들고 예술적 자유를 요구하며 떠난다.
- 동료 예술가들과 함께 신예술가 그룹을 결성하고 빈의 피스코 살롱에서 첫 전시회를 연다.
- 클림트의 도움으로 권위 있는 쿤스트샤우 전시회에 초청 작가로 참가한다.
3. 성장과 도전: 수집가와의 만남 및 어려움
- 1910년:
- 실레는 예술 평론가 아르투어 뢰슬러를 만나게 된다.
- 뢰슬러는 실레를 많은 예술 수집가들에게 소개한다.
- 1911년:
- 바이에른 크루마우에서 작업하며 모델 발레리 노이질과 함께 지낸다.
- 그러나 주민들로부터 비도덕적이라는 비난을 받으며 마을을 떠나야 했다.
- 1912년:
- 실레는 미성년자 유괴 혐의로 기소되어 3주간 수감된다.
- 이 경험은 그에게 큰 충격을 주었으며, 이후 그의 예술에 중요한 영향을 미친다.
- **《감옥 일기》**에 수감 생활 중의 비통함과 반항심이 기록되어 있다.
4. 개인적 변화와 예술 활동
- 1912년: 에디트 하름스와 결혼
- 결혼 이후 실레의 작품은 덜 폭력적인 에로티시즘을 보여주기 시작한다.
- 1915년:
- 실레는 오스트리아 군대에 징집되지만 전선 배치는 피한다.
- 이 시기 그의 예술 작품 생산량은 감소하게 된다.
- 1917년:
- 빈으로 돌아와 **제국 위원회(the Imperial Commission)**에 참여하며 예술 활동에 집중한다.
- 예술가들의 자유를 위한 협회인 **쿤스트할레(Kunsthalle)**를 설립한다.
- 빈, 암스테르담, 스톡홀름, 코펜하겐 등지에서 다양한 전시에 참여하며 국제적 활동을 이어간다.
5. 비극적 결말과 유산
- 1918년:
- 2월 6일: 실레의 멘토이자 스승인 구스타프 클림트가 사망한다.
- 실레는 빈 분리파의 리더로 자리 잡으며 재정적, 예술적으로 안정된 시기를 맞는다.
- 10월 28일: 그의 아내 에디트 하름스가 스페인 독감으로 사망한다.
- 10월 31일: 실레 역시 같은 병으로 28세의 젊은 나이에 생을 마감한다.
에곤 실레의 예술 철학
"예술가를 억압하는 것은 범죄다. 이는 새로 태어나는 생명을 죽이는 말이다."
- 이 말은 실레의 예술적 자유와 혁신에 대한 강한 신념을 보여준다.
주요 키워드
에곤 실레, 빈 분리파, 구스타프 클림트, 신예술가 그룹, 크루마우, 감옥 일기, 에디트 하름스, 오스트리아 표현주의, 스페인 독감, 예술적 자유
연결될 주요 작품 링크
- 1907년 클림트의 영향
- 《초기 누드 스케치》 (클림트 스타일 반영)
- 1911년 크루마우 시기
- 《크루마우 마을의 크레센트》
- 1912년 감옥 경험
- 《감옥 일기》
- 1915년 결혼 이후 작품
- 《부부와 아이》: 새로운 안정감과 에로티시즘 변화
- 1918년 최후의 작품
- 《가족》: 그의 마지막 걸작으로 평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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